▲ 김춘석 PEC코리아 대표

오후 늦게부터 굵은 장대비가 아스팔트로 쏟아져 내리고, 도로 위의 차들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선장에게 내일 출조 여부를 확인해보니 “변함없이 출항하니 나오세요!” 라고 하였다.

자정 무렵, 출조자를 점검하여보니 목선배는 그간 경험으로 볼 때 비가 오면 고생만 하고 소득이 없었다고 포기하셨고, 곽사장은 변함없이 간다고 하였다. 새벽 2시경, 낚시도구를 주섬주섬 챙기며 출발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계속 만류하였다. 그러나 나는 지난주도 물고기를 못 잡았고, 오늘도 포기한다면 다음 주까지 아득하기만 하여 출조를 고집하였다.

새벽 3시, 낚시가방을 둘러메고 아내의 만류를 귓전으로 흘리면서 새벽 비를 맞으며 집을 나섰다. 그래, 모처럼 홀로 가는 구나 그동안 혼자 가기 싫어 아들을 데리고, 형님도 모시고 갔었는데 오늘은 홀로 빗속을 뚫고 연안부두로 가야했다.

길이 매우 미끄럽고 게다가 서인천 근처에서는 폭우로 인해 와이퍼를 힘차게 흔들어도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아내의 말이 문득문득 떠오르면서 괜한 고집을 부린 것 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연안부두에 도착하여 새시대호 가게에서 승선명부를 적으며 출조자를 확인하여 보니 모두 12명이었다. 출조자가 적으면 대체적으로 조과가 좋았는데 글쎄 오늘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선실로 내려가 사모님이 주는 국수를 먹고 잠을 청했다. 항구를 떠나는 배의 우렁찬 엔진소리와 바닷물을 때리는 낙수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뚜…….’ 낚시 준비를 알리는 벨소리에 깨어 얼른 선실 밖으로 나가보니 빗줄기가 더욱 굵어져 있었고, 바다 물도 험상궂게 출렁거리는 최악의 날씨였다. 이래서야 낚시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지만 선장이 주는 우비를 입고 낚시를 준비하며 기다리다보니 드디어 배가 정지하였고, 우럭채비를 출렁이는 바다 속으로 던지자마자 ‘후드득’하는 어신이 왔다.

장대비 속에서도 잔우럭과 노래미가 올라왔고 2시간 동안 잔챙이 20여 마리를 잡았다. 그래 아무리 장대비가 쏟아져도 깊은 바닷물 속에 있는 물고기들이 태풍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바다 위의 세상을 알 수 있으랴.

오후에 들어서자 어느덧 비가 그치고 서서히 하늘이 열리면서 해님이 수줍은 듯 먹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내 옆에 있던 동호인이 매우 힘들게 낚싯줄을 끌어 올리고 나서 “와!”하고 고함을 질러 쳐다보니 엄청난 크기의 우럭이 선상으로 올라왔다. 도대체 얼마나 큰지 내가 줄자로 재어보니 무려 56㎝나 되었고, 지금까지 인천에서 본 것 중 가장 큰 우럭이었다. 그 동호인은 10여 년간 낚시를 다니면서 오늘 제일 큰 우럭을 잡았다며 무척 기뻐하였다.

선장은 개우럭이 나오자 신나서 다시 한 번 배를 포인트에 대면서 “개우럭이 나오니 잘 잡아보세요!”라고 선내 방송하였다. 나는 바짝 긴장하면서 우럭채비를 던져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잔챙이 입질만 오고 큰 입질이 없어 다소 실망스러워 하고 있는데 ‘훅’하는 느낌이 왔고 챔질을 하고 나서 서서히 올리는데 우럭이 올라오면서 요동치는 느낌이 좋았다. 잠시 후 우럭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눈대중으로 보아도 3자 우럭은 충분하였다. 우럭을 올려서 사진을 찍고 나서 줄자로 재어보니 35cm나 되었다. 비록 5자는 아니지만 그 정도 만족하였다.

나는 비록 개우럭을 잡지 못했지만 동호인이 잡는 것을 직접 보았으므로 인천 근해에서 개우럭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인천에서 5자 개우럭을 잡아 크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럭저럭 낚시가 끝나고 오늘도 배에서 하루해가 저물고 있었다. 장마철에 그것도 장대비가 퍼붓는 상황에서 무보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랜 망설임과 두려움 속에서 혼자 출조하였지만 그런대로 즐거웠다. 이제 부지런히 집에 가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순도순 이야기 하며 즐겁게 식사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