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석 PEC코리아 대표

드디어 기다리던 주말이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금요일 저녁이면 어린 시절, 소풍 전날과 같이 들뜬 기분으로 마음이 설렜다. 장마철이라 비가 온다는데 과연 출항할 수 있을까? 물론 선장은 출항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하였으나 그래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깊은 밤, 핸드폰이 힘차게 울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도대체 이 시간에 누굴까? 전화를 받으니 곽 사장이 자기는 지금 출발하는데 나도 빨리 출발하라고 성화였다. 곽 사장은 지난 5월 나와 함께 평택항을 다녀온 후 첫 출조라서 마음이 급한 모양이었다. 전화를 받고나자 나도 조급해져 낚시도구를 챙겨 새벽 2시, 연안부두로 출발하였다.

연안부두에 도착하니 새벽안개가 너무 짖게 깔려있었다. 새시대호 가게에 들러 승선명부를 기입하고 배에 올라가자 곽 사장이 반갑게 우릴 맞으면서 자기가 자리를 다 잡아 놓았으니 편한 자리를 골라서 앉으라고 하였다.

천천히 낚시 준비를 마치고 선실로 내려가 잠을 청했다. 늘 내가 눕던 그 자리에 이불을 펴고 눕자 안도감과 편안함이 찾아왔다. 참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도 또 지지난주도 이 시간, 이 자리에 이렇게 누워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마와 가슴에서 땀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후텁지근한 더위 때문에 잠에서 깼다. 선실 밖은 이미 훤하게 밝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배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선장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해상에 안개주의보가 발표되었으므로 해제되기 전까지는 출항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런, 벌써 오전 7시가 되었는데 언제 안개주의보가 해제되고 출항하여 낚시한단 말인가? 안개가 너무 야속했다. 일주일을 기다리고 기다려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니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선상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10시가 넘자 해무가 조금씩 걷히면서 항구 등대가 보이기 시작하자 배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등대 방파제로 나가자 다른 배들도 우리배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해경에서는 무전기를 통해 항구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조금 더 기다려보라고 하였다.

그때 선장은 배를 방파제에 바싹 붙이더니 낚시를 해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낚시채비를 내리자 수심 6~7m로서 봉돌이 방파제 돌무더기에 닿았다. 채비가 걸릴 것을 대비하여 조심스럽게 어신을 기다리고 있는데 ‘후드득’ 하면서 우럭 입질이 왔고, 릴을 감아보니 10cm 정도의 우럭이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채비를 넣자 또다시 어신이 왔고, 조금 더 기다리자 또 어신이 와서 지체 없이 릴을 감아보니 우럭 쌍걸이가 올라왔다. 이렇게 입질이 좋으면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여기서 낚시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여 분간 우럭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다시 해무가 짙어지면서 연안두부도 보이질 않자 해경에서는 부두로 돌아오라고 재촉을 하자 할 수 없이 뱃머리를 돌려 부두로 돌아왔다. 11시가 넘어도 해상에 짙은 해무가 걷히지 않자 선장은 결국 출항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 주를 기약하면서 되돌아서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나는 너무 피곤하여 운전하기 곤란하다고 하자 목선배께서 운전하여 귀가 길에 올랐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차안에서 엄청난 피로감으로 꾸벅꾸벅 잠만 잤다.

평소, 하루 종일 낚시하고 연안부두에 돌아와 운전하여도 별로 힘든지 몰랐는데 오늘은 하는 일도 없이 매우 피곤하고 게다가 배까지 고팠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우럭 여섯 마리가 쿨러에 있어 집에 가서 우럭회에 소주 한 잔하고 낮잠을 실컷 잘 수 있다는 있다는 점이다.

그래,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열정이 솟아나 피곤하거나 힘든지도 모르고 즐겁게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못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되면 쉬 지치고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