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석 PEC코리아 대표

낚시가게에서 승선명부를 살펴보니 곽사장이 맨 위에 있어서 그 다음번에 내 이름을 기재하였다. 오늘은 사람도 적고, 먼저 도착하였으므로 평소 내가 원하는 자리를 골라잡을 수 있어 승선하기 전부터 어느 자리에 앉을까 심사숙고하기 시작하였다. 고민 끝에 오늘은 선미 좌측 코너에 앉아서 승부를 벌여 보자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막상 배에 오르자 갈등이 생겼다. 지난 수개월간을 고수하였던 배 중앙에 앉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자리를 개척할 것인가? 망설이다 처음 정한대로 선미 좌측 코너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곽사장은 선미 우측 코너를 차지하였고, 내가 주로 앉던 중앙에는 목선배가 자리를 잡았다.

선실에서 모처럼 만난 곽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주와 잔치국수를 먹고 나서 단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 선상으로 나와 보니 물때가 좋지 않아 그런지 낚시 동호인들은 8명에 불과하였고, 오히려 뱃놀이를 나온 가족들이 10여명이나 되었다.

낚시가 시작되고 30여분 동안 나는 잔우럭 세 마리를 잡았으나 곽사장과 목선배는 아직 개시도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에서야 제대로 자리를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게 웃으며 대물을 향한 열망을 키워 나갔다.

얼마 후 뱃머리에 있는 가족 팀의 환호성이 들렸다. ‘와! 와!’ 하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자 선미 쪽에서도 나올 때가 됐는데 하는 기대감으로 계속 기다렸으나 어느 누구도 개우럭은커녕 노래미도 잡지 못하고 애만 태웠다.

어찌된 일인가? 이게 무슨 조화냐? 그렇게 오전시간이 흘렀고, 선수에 앉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도 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선미 쪽의 동호인들은 맥이 풀리고 기가 막힐 뿐이었다. 선수 쪽에는 아주머니와 어린 학생들도 우럭을 쑥쑥 잡아 올리는데 우리는 잔챙이만 간간히 올라오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 아닌가? 만약 오늘 선수에 자리를 잡았다면 나도 대물을 잡았을 텐데 하는 자책감이 들고 오전에 잠시 흥분했던 기분은 온데간데없고 자리 탓만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다.

마음을 추스르고 초심으로 돌아가 배의 포인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배낚시의 조과는 경력자나 초보자 구분 없이 그날 어복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물론 선장이 포인트에 배를 어떻게 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럭이 내 낚싯바늘을 물어 주어야 잡는 것이지 물지 않으면 소용없었다.

우럭 관점에서 보면 이 바늘은 프로의 것이고 저 바늘은 아마추어의 것인지를 어찌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낚시마니아라면 조급함과 초초함을 버리고 느긋하게 즐기면서 기다리다 보면 대물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배에서 포인트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만, 배에 설치된 어탐 주변에 자리를 잡을 경우 포인트 위주의 배낚시에서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낚시하기 편한 위치 즉, 낚싯줄 엉킴이 적고 바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곳이 가장 좋은 자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낚싯배의 선장이 배를 어떻게 포인트에 접근시키느냐에 따라 조과가 달라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신진도항의 S호의 경우, 어초나 침선 등에 접근할 때 대부분 선미 쪽으로 진입하므로 입질이 선미부터 시작하여 중앙으로 이동하고 선수 쪽에서 끝이 난다. 그러다보니 우럭이 적을 경우 선미에서 잡고나면 선수에서는 잡을 수가 없으므로 조과가 차이가 난다. 그러나 물고기가 많을 경우에는 앞뒤 차이가 없고, 특히 개우럭 등 대물의 경우 그날의 운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집에 와서 물고기 손질을 끝내고 저녁식사를 위해 거실에 앉아 있으니 낚시할 때는 몰랐는데 몸이 좌우로 흔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배에서는 선수와 선미가 위아래로 흔들림이 가장 많으므로 집에 와서도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가벼운 어지럼증이 생긴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