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준 교수

원자력에너지는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를 에너지 수출국가로 급부상시켰으며, 국민들에게 전력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국가경쟁력과 삶의 질 제고에 큰 기여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에너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정작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은 점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5년 12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원자력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원자력국민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원자력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85.1%였으나 응답자 52.4%가 원자력에너지가 ‘안전하지 않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원자력에너지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래도 두렵고 무서운 ‘야누스의 얼굴’과 같은 존재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정부와 원자력계는 원자력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원자력에너지의 사회적 수용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낡은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으며, 일시적이고 단선적인 이벤트성 커뮤니케이션에만 급급하여 소통의 효과 및 효율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않는 정부중심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에만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원자력에너지에 대해 두 마음을 품고 있는 한국사회의 심리적 상태를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정책소통의 방향성을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째, 투명한 소통이다. 여러 연구들을 보면 투명성을 정부나 정책의 신뢰도를 향상시키는 촉매제이며, 부정부패를 줄이고 공공성과 책무성을 증진시키는 효과적인 개입전략으로 소개하고 있다. 투명성에 대한 여러 가지 개념적 정의가 존재하지만 필자는 투명성을 ‘중요한 선택에 꼭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시의적절하게 제공하여 행위자의 합리성과 책무성을 강화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공공선을 증진하고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원자력계는 투명한 소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단순히 소통의 전략과 전술 차원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투명하게 확립될 수 있는 제도화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자력에너지와 관련된 정책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시민들의 참여와 숙의가 촉발될 수 있는 정책메시지를 개발‧공유해야 하고 정부와 국민 간 담론과 의사결정의 고도화가 발현될 수 있는 소통관리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둘째, 원자력에너지의 사회적 자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전제로 원자력에너지의 신뢰 프로세스를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경제 혁신, 발전, 위기극복 등의 동인은 곧 사회적 관계와 관련된 도덕적 습관이나 윤리적 메카니즘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후쿠야마의 주장에 따르자면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필요성 인식은 어느 순간 행위자들의 사회구성원리 즉 사회규범, 도덕률, 공공가치 등의 분모가 재구성되면 얼마든지 가치가 변동될 수 있는 분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점들을 개선해야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확충될 것인가? 첫째, 원자력에너지의 전문성(expertise)을 극명하게 표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에너지 전문성은 단연 세계에서 인정받는 수준이다. 발전량으로는 세계 6위이며, 회사 단위로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세계 2위 규모이다. 잘하는 일에 대해서 계속 알리고 또 사회적 인정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둘째, 원자력계의 정직성(honesty)을 증명해야 한다. 정직하다는 인식은 한 순간에 획득할 수 없다. 원자력계 내부에 대언론관계, 홍보업무, 정책소통, 대민관계 등에 정통한 인재 발굴과 육성을 통해 국민들로 하여금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하는 소통전략과 마스터플랜 개발의 주역이 있어야 한다.

끝으로, 호의성(benevolence)을 지속해야 한다. 먼저 원자력계는 얼마나 국민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는지 그리고 시민들의 감정계좌에 얼마나 충분한 심리적 예치금을 적립해 두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발전소 입지선정, 방폐장 건설과 같이 전략적으로 목표가 설정된 후에야 비로소 대상 후보지에 호의성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는가? 원자력에너지라는 공공재를 가지고 소수 이해관계자 집단의 감정계좌에만 예치금을 적립해 놓은 것은 아니었는가? 이 시점에서 원자력에너지가 공공정체성(public identity)을 가지면서도, 일반 국민들에게 얼마나 호의를 베풀고 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짓자면, 공공관리에서 공공거버넌스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 적신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특이하고 변칙적인 기법이나 술책을 조장하여 본질을 흩뜨리거나 일시적인 성과를 위해 일반 국민들의 판단과 행위를 지연, 왜곡, 변질, 중지시키는 정책소통이 치밀하게 기획되고 무리하게 강행된다.

이러한 때일수록 소통의 기본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원자력계의 갈등과 고민의 해답은 초등학교 윤리, 도덕 수업에 배운 내용이나 혹은 교회나 절에서 설파되고 있는 성인들의 말씀에 이미 다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필요성과 불안감의 심리적 극간을 줄이는 일 그리고 원자력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가치체계를 긍정적으로 수렴시키는 일의 시작은 투명성과 신뢰라는 원칙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