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안전한가?

관련 분야에 종사하면서 이 문제를 되뇔 기회가 종종 있다 보니, 이를 설명하기 위한 일련의 패턴이 생겼습니다. 짧게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방사선은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주변에 충만합니다. 우주만물에서 방사선이 나오고 있습니다. 방사선 자체가 싫으신 분은 우리 우주 안에서는 살아가실 방법이 없겠습니다. 이를 ‘자연 방사선’이라고 칭하겠습니다.

2. 자연 방사선 이외에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방사선이 있습니다. 본질은 동일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용 엑스레이 같은 것입니다. 원자력발전소(원전)에서도 방사선이 나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방사선은 발전소 밖으로 삐져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편의상 ‘발전소 방사선’이라고 이름 붙이겠습니다.
3. 원전을 옹호하는 쪽은 자연 방사선에 비해서 ‘꽤 낮은’ 발전소 방사선이 나온다면 원전을 가동해도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원전을 반대하는 쪽은 ‘극도로 미량’의 발전소 방사선이라도 수용하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나름 일리가 있습니다.

4. 제가 내린 결론 중의 하나는 대체재가 없으면 위험을 수긍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방사선이 나온다고 의료용 엑스레이를 반대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원자로도 의료용 물질을 생산하는 소형 타입이 있는데, 이것은 찬성쪽이 많아 보입니다. 이 경우 역시 필요가 걱정을 넘어선 경우 같습니다. 전기를 만드는 대형 원전이 문제인데, 이는 방사선의 문제 이전에 원전을 다른 발전소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다른 발전소로 대신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원전을 지어서 조금이라도 방사선을 더 받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5. 한편 사고가 나면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데, 평소에 괜찮다는 이유로 원전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체재가 없어도 이러한 원전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위의 일련의 질문에 대해서 ‘원전이 안전하니까 사용해야 한다’는 것보다, ‘원전은 필요하니까 안전해야 한다’라고 전제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다른 발전소가 원전을 대신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워낙 큰일이라서 여기에서는 이렇게 간단히 언급만 하겠지만, 안전/위험을 따지기 이전에 필요/불요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가 그리 풍족한 조건의 나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안전 문제를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정상적으로 운전되는 원전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쪽입니다. 소량으로 나오는 발전소 방사선을 인정하지 않으면, 저로서는 다소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하나 생깁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자연 방사선을 받는 정도는 1년에 대략 2~3 정도인데, 정상적인 발전소 주변에서는 이 수치의 1% 미만을 받습니다.

한 명은 자연 방사선이 적지만 발전소 방사선을 받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자연 방사선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산다고 가정합니다. 이 때 발전소 방사선을 받은 사람은 전체 방사선 피폭량은 적지만 발전소 방사선에 대한 귀책사유가 있는 기관이 곁에 있으므로 피해 보상을 받습니다. 반면 더 방사선을 많이 받더라도 이것이 자연 방사선이라면 볼멘소리 못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연 방사선에 발전소 방사선을 더해도 일상의 차이는 없으며, 어느 정도 선에서는 관용의 묘를 발휘할 만 하다고 보입니다.

원전에서 사고가 난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아마도 이를 모든 분들이 걱정하고 계신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그동안 몰랐던 현안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과연 원전을 우리 곁에 둘 만큼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머지 지면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공학을 합니다. 공학은 과학을 기반으로 합니다. 과학적 사실을 가지고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듭니다.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을 만들던지 득과 실이 있습니다. 득과 실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불행히도 과학 자체가 귀납적이기 때문에, 공학도 귀납적으로 발전을 합니다.

달리 설명하자면, 완벽한 이론으로 여겨지던 것도 단 하나의 반례로 무너지듯이, 원전의 안전을 더없이 높은 수준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공학자들은 다양한 장치를 구비하지만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예기치 못하는 사고로 인하여 원전 안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집니다. 아이작 뉴튼이 말했듯이 우리가 바닷가를 거니는 소년 정도의 수준 밖에 안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100% 완벽한 안전을 달성할 수가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대목입니다.

보통 원자력 사고하면 회자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 사고, 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 그리고 바로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 사실 이들 이외에도 실제 우려스러울만한 원자력 사고들은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당초 이런 사고들은 공학자들이 완벽하게 예상하고 대비를 했어야 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면서 진취적인 한발을 내 딛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미지의 재해를 막기 위하여 우리의 도전을 재검토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늘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쿠시마 사고의 핵심은 아주 드물게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던 자연재해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이미 공학자들은 그러한 자연재해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진과 쓰나미라는 재해가 동시에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였습니다. 다소 공학자들의 입장을 옹호하자면 가능성이 작은 사고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 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사고에 대해 투자를 하고 방어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합리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뒤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하겠지만, 우리는 한정된 재원으로 최상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여러 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에 대한 요건도 미흡하게 반영되어 있었지만, 쓰나미는 정말 심각했었습니다. 지진도 사례가 없을 정도로 큰 강도로 발생하였지만 실제로 지진만 발생했었다면 별일 없이 사건이 종료되었을 것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쓰나미였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역사 사료에 높은 쓰나미의 사례가 여럿 있었고, 낮은 쓰나미 방벽에 대한 지적도 이전에 있었음이 밝혀졌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사후약방문과 같았습니다.

원전 안전에 가장 중요한 잔열을 제거하기 위한 시설은 대부분 전기를 필요로 하는데, 전기를 공급하는 비상디젤발전기, 직류축전지, 배전반 등이 낮은 위치에 설치되어 있어 쓰나미의 공습에 완전히 무방비로 녹다운 당했습니다.

기계장치가 좀 부실해도 사람은 언제나 기계의 단점을 보완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절차서가 부실했다던가, 훈련이 부족했다던가, 사고대응에 대한 임기응변 역량이 충분치 않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후쿠시마 시나리오를 분석한 저의 결론은 당시 현장에 있던 엔지니어들은 최신을 다 했다고 밖에 결론내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의사결정이었습니다. 사고 초기에 해당 발전소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신속하게 모이고, 최고의 지식을 동원하여 발전소 복구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면 국제원자력기구가 정한 7단계 사고까지 심각해지는 결과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원자력 유관기관 간, 기관 내부의 정보 소통이 부족하였으며, 다른 비상대응 전문조직으로부터 원자력이 고립되어 있었다는 정황도 있습니다. 다행히 신속한 비상대피가 이루어져서 방사선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방사능 오염으로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음을 알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사고를 통해서 우리가 뭔가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큰일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 우리나라의 사업자나 규제기관은 다양한 각도에서 후속조치를 전개했습니다. 전술한 내용을 통해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습득한 교훈으로 마련된 후속조치들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이 되겠습니다.
1. 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방벽강화: 우리나라는 지진과 쓰나미에 대해 비교적 강도가 덜 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과거 사례도 다시 점검하고 방벽, 방수 등을 철저히 보완하였습니다.

2. 안전설비 강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가동중인 원전은 잔열을 제거하기 위해 전기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전력 설비 이외에도 발전차량, 축전지 등을 보완하고 전기가 없어도 사고대응을 할 수 있는 설비들을 차례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화재도 사실 발전소 안전에 무척 중요합니다. 소방 설비가 강화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방사성 물질이 격납건물을 결코 새 나가지 않도록 필터가 달린 배기 장치와 잔열 제거를 위한 냉각수를 외부에서 주입하는 장치를 설계 중에 있습니다.

3. 오래된 설비에 대한 점검 강화: 아무래도 오래된 설비가 사고에 취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중요한 설비에 대해서 감시를 강화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수리할 수 있는 체계를 보완하였습니다.

4. 사고시 대응방법 강화: 앞서 내용들은 사고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실제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조치도 강화하였습니다. 발전소 내부적으로는 사고시 필요한 절차서를 보완하고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선하였습니다. 인력도 충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명과 재산에 대한 사고의 여파를 최소로 하기 위하여 약품이나 장비를 강화하고, 주민보호 조치를 위한 법적인 측면도 개정하였습니다.

이러한 대응책은 대개 하드웨어와 밀접하며 하나를 둘로, 얇은 것을 두껍게와 같은 설계 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것이 있습니다. 올해 규제 기관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을 쓰겠다고 공언한 부분은 바로 품질관리입니다. 또한 사업자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 중에 하나가 품질관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품 구매제도 개선입니다. 이는 발전소의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발전소가 안전하게 가동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원전은 안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안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까닭은 안심이 되지 않으면 불필요한 비용이 들어가서 결국 안전도가 낮아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규제기관도 사업자도 한정된 자원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고는 약한 곳을 비집고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특정한 현안에 매몰되면 하나는 완벽히 막을 수 있겠지만, 정작 돈을 들어야할 다른 곳은 구멍이 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전은 그러면 안전하냐‘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100% 안전한 원전은 없습니다. 따라서 위의 질문은 원전을 ‘우리 곁에 놓고 사용할 만큼 가치가 있느냐’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저는 종사자가 안심하는 순간이 위험한 때 같습니다. 긴장이 느슨해지는 부분이 없는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원자력 분야 인력들의 실력이 차츰 낮아지고, 그 나마도 충분하게 공급되고 있지 못합니다. 사회적인 눈총이 거세지면서 원자력 종사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일자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사이버 보안의 영향 때문에 기관 간 정보 소통이 더 위축되었습니다. 지식의 나눔이 막혀버린 상황에서 긴급할 때에 충분한 전문가 인력풀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원자력 안전연구가 보다 관‧산‧학‧연이 협업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최상의 지식을 모든 기관이 공유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현안에 대해서 규제자와 사업자가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에, 중요한 의사결정은 누가 내릴지에 대한 실질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전문가 중에는 원전에서 큰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적으므로, 원전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시는 분이 계십니다. 잘못된 의견은 아닙니다. 실제로 원전의 사고확률은 타 산업에 비해 낮은 것이 사실이고, 현재 추정된 값도 기술자적인 입장에서는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전 사고를 보는 본질은 확률이 작으므로 용인하자가 되면 안 되고, 한 번의 사고가 발생해도 미치는 영향이 작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방사선이 인체 또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애써 작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민감한 것이 누굴 위해서 좋을까요?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한 이후 경기도 지역에 비가 온 적이 있습니다. 그날 제가 거주하는 경기도 지역에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하루 휴교를 하였습니다. 당시 방사선이 잘 닦이는 비누, 방사선에 강해지는 홍삼 등으로 포장되는 제품이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저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원전 사고를 막을 장치는 나날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원전 사고가 났을 때에 우리가 제대로 상황을 판단한다면 불필요하게 손해보는 부분은 크게 줄일 수 있고, 그러면 원전을 사용하면서 얻는 득실이 과히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원전만 안전하면 뭐 하겠습니까. 이웃 나라 중국은 2050년까지 약 400기의 원전을 중국의 동해안, 즉 우리나라 서쪽 해안에 지을 예정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러한 것처럼 중국도 사고 시 편서풍 영향을 우려하여 내륙에 원전을 짓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만일 중국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원자력과 방사선에 대한 지식이 영 잘못되어 있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 명약관화해 보입니다. 원전 안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국민 누구나가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방사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올바른 결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면 원전 정책도 순리대로 흘러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