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새벽부터 옆집 공터에 매어 둔 개가 짖어대는 바람에 일찍 잠에서 깨어 설레는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니 섬마을 풍경이 안개 속에 고즈넉하였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안개가 짙어 출항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우리는 우럭 라면을 먹고 백령도의 절경인 두무진으로 향했다. 두무진에 도착하자 선장이 반갑게 우릴 맞으며 안개주의보가 해제되어야 출항하므로 일단 대기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부둣가에 앉아 낚시채비를 손질하면서 선장과 해무에 대해 이야기해보니 통상 물발이 약해지는 조금 때 짙게 깔리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온 종일 걷히지 않아 출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오전 내내 기다렸으나 결국 해무가 걷히지 않아 두무진 낚시를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후에 중화동 포구로 다시 갔으나 해무가 걷히지 않았고 해안초소에는 출항금지를 알리는 청색깃발이 걸려 있었다. 선장은 깃발을 외면하고 어제 낚시하던 곳으로 배를 몰았다.

포인트에 도착하여 우럭채비를 내리자 ‘후드득... 턱!’ 하는 큰 입질이 있어 천천히 릴을 감아보니 대구만한 노래미가 주먹이 들어갈 만한 큰 입을 뻐끔거렸다. 아직까지 이만한 크기의 노래미를 본 적이 없어 뿌듯하고, 백령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해안초소로부터 귀항하라는 독촉이 빗발치자 선장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포구로 이동하였다. 포구 주변에서 낚시하였으나 입질이 없고, 해안초소에서는 북한배가 출현하였으니 무조건 귀항하여 정박하라고 아우성쳤다.

오늘 물고기를 몇 마리 잡지 못했으며, 그나마 배에서 회를 떠서 모두 먹었으므로 저녁 반찬거리가 마땅치 않아 수련원 인근 식당에서 막창구이와 해장국으로 식사하였다.

백령도에 들어온 지 3일이 지났으나 여전히 해무가 짙게 깔려 있었고, 몸은 점점 피곤하여 금방 일어나지 못하고 꾸물거리며 더뎠다. 새벽 6시경 선장이 출발하자고 문을 두드리자 그때서야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라면을 먹고 봉돌과 미꾸라지 등을 챙겨 느릿느릿 선장을 따라 길을 나섰다.

중화동 포구에 도착하여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해안초소를 바라보니 어제와 같이 “청색깃발”이 그대로 걸려있고 초병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 청기백기게임에서 보면 “청기 올려, 백기 내려!, 청기 내려 백기 올려!”라고 하는데 이놈의 청기는 3일간 마치 석상인 것처럼 고정되어 있다니 답답한 마음에 바다를 향하여 “청기 내려!”를 외쳐보지만 부질없었다.

부둣가에 앉아 있기도 지루하여 선착장에 매어 있는 낚싯배로 들어가 잔챙이라도 잡을 요량으로 우럭채비를 내렸으나 모래밭이라 그런지 입질이 전혀 없었다.

조관복 씨가 옆 배로 건너가 물속에 잠겨있는 어망을 슬그머니 들어 올리고 그 안에 있던 성게를 우리 배로 연신 던졌다. 첫 번째 성게가 갑판에서 부딪쳐 깨지면서 노란 성게 알이 짙게 흘러나왔다. 우리는 얼른 소주를 챙겨 성게 알을 안주삼아 한잔 들이키니 그 맛과 향이 입속에서 녹았다.

아침 소주파티가 끝나고 나는 선상에 모로 누워 단잠을 자고 났더니 선장이 출항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얼마 후 초병으로부터 출항해도 좋다는 말과 함께 가능하면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포구에 있던 배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조업구역으로 쏜살같이 내 달렸고, 우리는 첫날 낚시하였던 ‘전복양식장’으로 나갔다.

낚시를 드리우자 여기저기서 3자, 4자 우럭들이 올라왔다. 오랜만에 우리들은 활기를 되찾고 낚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후 내내 여러 포인트를 다니면서 낚시한 결과, 꽤 많은 우럭과 노래미가 낚싯배의 물간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해상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선장은 내일 대청도에 가려면 일찍 들어가서 쉬자고 하여 우리는 오랜 기다림 끝에 팔이 아프도록 실컷 물고기를 잡았으므로 이에 만족하고 흔쾌히 동의하였다. 배가 포구에 정박하자 우리는 물간에 있는 물고기를 뜰채로 건져 할머니 댁에 맡기고 수련원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