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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와 PL법 제1조의 실종
기고 / 박영식 한국SR평가원장
2016년 06월 16일 (목) 관리자 webmaster@elenews.co.kr
   
 
  ▲ 박영식 한국SR평가원장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규모를 헤아릴 수 없는 피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그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의사능력이 없는 영유아의 피해는 물론 잠재적 피해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해 기업과 정부 당국의 뒷북 수습이 선진국 문턱에 있는 국가인가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1980년대 미국 만빌(Manville)사는 ‘조용한 시한폭탄’이라고 하는 석면이 발암 유발 물질이라는 것을 알고 거대한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서 결국 파산 신청을 하고 만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도 미국 법정은 석면의 체내 축적으로 인해 잠재된 피해에 대한 배상을 가지고 거대한 소송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1990년대말 OECD(경제개발협력기구)는 동 기구 가입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한 PL법 제정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 경제 및 산업 단체는 산업정책적인 관점에서 입법 보류를 요청하였으나 사회정책적 측면에서 상당한 유예 기간을 두고 PL법을 제정하게 된 배경을 가지고 있다.


PL법 제1조는 “ …제조물의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제조업자 등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함으로써 피해자 보호를 도모하고 국민생활의 안전 향상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에 두고 있다.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에서 문명의 이기(利器)에는 반드시 그 부정적 영향이 있음을 전제로 한 법률로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이 법리의 근간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제조업자 및 유통업자에게 안전한 제품 공급 의무와 이를 통한 경쟁력 있는 제품을 통한 국민 경제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행동은 이와는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PL법 제1조를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부 주요 국정 과제의 하나로 국민생활의 안전을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건만 주변은 온통 사고와 사건으로 뒤범벅되고 책임 전가에 급급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안전한 제품을 통한 경쟁력이 창조경제의 중요 핵심 행동 원칙이 되었어야 함에도 수익률에 치중한 나머지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변칙이 되어 버렸다.


미국 법정에서 “소송은 혁신의 지름길”이라는 조크가 있다. 그래도 미국은 소송이라는 비용을 지불하면 어떠한 형태로든 안전과 관련된 혁신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다행인가? 우리는 어떠한가. 비용을 지불해도 개선되고 혁신되지 않아서 문제이고 72일의 기억에서 정말 망각되고 마는 것인가?


정치권에서 PL법을 손질하겠다고 난리다. 현재 존재하는 법률도 사문화되고 있는 지금 법률만능주의를 만들 모양이다. 일부 학계에서는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가지고 연일 토론 일색이다. 대량소비시대에 정보의 격차가 야기하는 피해, 그리고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기업의 자정을 위해서는 모두 필요한 제도들이다.

문제는 PL법에 대한 국민적 인식 부족이 아니었겠는가. 대다수의 국민은 PL법에 대한 생소함, 무관심으로 인해 일반적인 생활 피해에 대해 접근 방법을 찾지 못하다 보니 피해의 정도, 규모가 확대될 수 밖에 없다. 물론 대규모 소액 피해에 대한 집단소송제도도 필요하고, 기업의 도덕적 모순(矛盾)을 전환하기 위해 징벌적손해배상 제도의 도입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보다는 보다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하고 동일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PL법 제1조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제품의 결함과 피해를 규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양자의 인과관계 규명이다.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 피해자는 그 원인 규명에 결정적인 한계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난제를 풀어 줄 전문적 원인 규명기관의 현주소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지하에 있는 레이첼 카슨(Rachel Charson)의 망령이 통곡할 노룻이다.


시설과 재화로 인한 사고 피해의 일차적 해결은 피해자의 신속한 구제이고, 그 다음은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원인 분석을 통한 사고규명이다. 선진국이 촘촘한 사고규명기관의 시스템으로도 밝혀지지 않는 사고원인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사고원인규명기관은 양과 질에서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보장되어야 할 사고원인규명이 자본의 손에서 규명될 경우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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