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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칼럼 / 논리의 허와 실
2015년 01월 22일 (목) 관리자 webmaster@elenews.co.kr
   
 
  ▲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겸 발명교육인협의회장  
 

논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훌륭한 도구라도 그 쓰임새가 다르면 거추장한 짐이 되듯, 논리도 때론 거추장스런 굴레가 될 수 있다. 특히 창조적 사고의 발아단계에 있어서는 논리는 반드시 뛰어 넘어야할 장벽이다.


흔히 생각하기를 과학과 발명의 세계에 있어 논리란 만병통치약이요, 빛과 소금 같은 존재이며, 영원한 애인이며 숭배의 대상으로 여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억지이며 과장된 가치관의 산물이라 말하지는 않겠다. 논리가 발명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차지함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번쩍이는 발상을 현실의 세계에 드러내는 힘이 바로 논리력에서 비롯되며, 이 능동적인 과학의 세계를 일군 원동력 또한 논리의 힘 덕분이다.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 수많은 규칙과 질서, 법칙 또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볼펜 한 자루, 종이컵 하나에도 조미료처럼 논리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마치 인간의 세계란 논리가 없다면 그대로 멈추어 버리는 장난감이라도 되는 듯.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논리를 위대하게 여기는 인간 자체는 실상 극히 비논리적인 생명체라는 사실이다.


자연계에서 인간만큼 모순 된 삶을 사는 것도 없다. 인간은 배가 불러도 사냥을 하고,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적을 죽인다. 그뿐이 아니다. 너무 기쁘기 때문에 울고, 쉬기 위해 일을 한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논리의 힘이란 극히 일부분적인 현상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중요한 도구로서 사용되기에 우리는 그것이 전부인양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논리란 도구로써 쓰일 때, 그 가치가 빛난다. 망치를 나무를 자르는 일에 사용할 수 없듯, 논리도 제 용도에 사용될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창조의 과정에서도 이 진리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가끔 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이들을 만난다. 자칭 발명가라는 사람들로, 그들은 ‘과학이란 논리의 산물’이라는 주문을 왼다. 마치 ‘논리교’라는 종교의 맹신도들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없다.


이럴 때, 창조의 과정에 아이디어 발아단계와 실천단계가 명확히 다른 성격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들이 휘두르던 ‘논리의 칼’은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단계에선 적절하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피워내는 발아기에선 터무니없는 도구였던 것이다. 뜨거운 커피에 스트로우를 꽂은 격이라고나 할까?


모든 생물에 탄생의 시기와 생장과 번식의 시기가 있듯, 창조의 과정, 즉 아이디어 개발에도 중요한 두 가지 단계가 존재한다. 앞서 말한, 발아의 단계와 실천의 단계가 그것.


발아의 단계는 말 그대로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시점이다. 하나의 씨앗이 흙 위에 떨어져 싹을 내듯, 번뜩이는 힌트를 계기로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조작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연한 사고력이다. 시야를 넓히고 현상을 다각도로 이해하며, 감추어진 부분까지 투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선 때로 상상력도 동원되며, 모순 덩어리의 계산이 적중할 수도 있다. 논리는 오히려 짐스러울 뿐이다.


논리와 함께 이 단계에 뛰어들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문제들에 부딪혀 제 자리 걸음만 하게 된다. 이땐, 차라리 논리와 떨어져 ‘아무렴 어때, 닭이 먼저고 달걀이 먼저이건 간에 맛있으면 그만이지.’ 라고 속편하게 생각하는 편이 낫다. 어쩌면 ‘닭다리가 맛있으니 다리가 네 개 달린 닭을 만드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긴요할지도 모른다.


정작 논리가 필요한 곳은 다음 단계인 실천의 단계이다. 발아의 단계에서 탄생한 다리 넷 달린 닭과 하얗게 변해버린 우주, 들고 다닐 수 있는 집들을 다듬고 정리하는 몫이 논리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멋대로 자란 나무를 다듬는 과정인 것이다. 논리는 이 단계에서 쓰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미리부터 가지치기를 해서 나무의 크기를 줄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즉,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유연한 사고방식과 논리적 사고방식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발아단계에선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유연성을 발휘하고, 실천의 단계에선 논리를 이용하여 현실에 필요한 아이디어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창조에 있어 논리는 필요한 부분이지만, 반대로 극히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논리의 힘을 갖추되,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연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볼 때, 우리의 교육제도에 대해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논리력만을 강조하는 편파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제도가 과연 옳을까?


누구나 아이디어의 열매만을 따려한다면, 아이디어의 발아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창조의 세계는 열린 생각, 열린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wangyj39@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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