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5월로 접어들자 동호인들과 서울을 벗어나 멀리 남쪽으로 내려가 감성돔, 참돔 등 고급어종에 도전하고, 남녘의 싱그러운 정취를 흠뻑 느끼기 위해 출조 계획을 수립하였다.

당초 승용차로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인원과 장비 등을 감안할 때 무리가 있어 지인들의 도움으로 특별히 봉고차를 임차하였고, 참가자는 실비만 부담토록 하였다.

남해안 출조 계획을 확정하고 나자 오래전 거제도의 쪽빛바다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드디어 5. 5일 새벽 1시, 동호인들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하계동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들뜬 마음으로 왁자지껄하고, 통영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이 시끌벅적하였다.

 서울을 출발하여 대전을 지나서 대진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사위가 조용해지고 엔진소리와 자동차 바퀴의 지면 마찰음이 규칙적으로 들렸다.

참! 오랜만이다. 이렇게 동호인들과 함께 새벽 밤공기를 가르며 고속도로를 달려 본 적이 언제였던가? 고속도로를 달려가면서 창밖을 보니 오래전에 떠나온 낯익은 지명인 함양, 산청, 진주, 사천이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져 갔다.

28년 전 12월, 대전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 대전발 0시 50분 야간열차를 타고 10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곳이 진주였다. 어느덧 어둡던 산야가 새벽 여명이 밝아오면서 5월의 푸른 들과 산들이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서서히 제 모습을 하나 둘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통영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통영대교에 들어서니 통영항의 빼어난 자태가 새벽 해무와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했다. 지난 3월말, 국내 화단을 대표하는 빛의 마술사 ‘전혁림 화백’의 작품 '통영항'이 청와대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통영대교를 지나 일주도로를 돌아 목적지인 자그마한 포구에 도착하여 예약된 2인용 거룻배(일명 ‘택택이’) 3대를 빌려 우리가 직접 운전하여 선주가 알려준 미역양식장으로 이동하여 배를 정박시키고 낚싯대를 드리웠다.

물 맑고 수심과 수온도 적당하여 대물과 만선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었으나 점차 바람이 불어 일렁이는 물결 때문에 우리의 조각배가 계속 꼴랑거렸다. 드디어 첫 어신이 와서 올려보니 10㎝ 크기의 보리멸이었다.

보리멸은 등 쪽이 연한 황갈색이고, 배 쪽이 흰색으로 피라미와 비슷하며, 우리나라 연안의 모래에서 서식하고 있다. 얼마 후, 도다리 몇 마리가 올라와서 이런 조황이라면 먹을 만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10시를 넘어서자 점차 파도가 가파르게 높아지면서 우리의 조각배는 파도에 따라 춤추고, 한 사람씩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구토 증세를 보여 할 수 없이 낚시를 포기하고 포구로 돌아왔다.

민박집에서 오늘 잡은 물고기로 회를 떠서 초저녁부터 소주를 먹고 있으려니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식사를 하고나서 밤새도록 화투를 치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으나 다음 날에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통영에서 철수하여 귀경하기로 합의하고, 비를 맞으면서도 구경삼아 통영시장에 들러 참돔과 방어회를 떠서 귀경하는데, 조관복씨는 먼 길을 왔으니 이렇게 귀경할 것이 아니라 남해 미조해수욕장 근처에서 갯바위낚시라도 하자는 제안에 따라 삼천포로 내려가 창선대교를 넘어 남해로 들어갔다.

그러나 해가 저물고 비도 그치지 않아 미조에서의 낚시를 포기하고, 창선활어위판장으로 들어갔더니 깨끗하고 환한 분위기와 다양한 활어들이 수족관에 넘쳐났고, 그중에서 갑오징어가 가장 먹음직스럽게 보여 회를 떠달라고 하여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서 숙박을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한 결과, 나는 위판장 맞은편 동산위에 있는 펜션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서울로 가자고 하였으나, 조관복씨는 한사코 진주로 가자고 우기는 바람에 결국, 남해에서 나와 진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