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에 관한 한국인의 의식엔 甲에 대한 회한이 묻어 있는 듯하다. 모든 계약에서 계약 주도권을 쥐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결과가 또한 甲의 위치이다. 그러다 보니 계약서를 보고 우리는 거래 당사자의 종속성(?)을 예단하기도 한다.

최근 프랜차이즈 관련 가맹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각 종 대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였고, 대리점의 일명 ‘밀어내기’에 성난 대리점이 집단으로 본사를 성토하고 있는 광경도 자주 목격되고는 한다.

지난 정권에서 정책 당국자 및 경제관련 단체들이 열심히 외치던 相生에서 아마도 거래 당사자의 甲의 입장에 있던 이들은 ‘생’에만 열을 올린 나머지 조직의 일부 구성원의 과잉 충성심 혹은 애사심이 拙生으로 치달았는지도 모르겠다.

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조직은 조직 구성원 이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속에서 본래 조직 목적을 수행할 수 있으며, 소통은 이해와 배려라는 가치에 의해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행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진대 근래에 와서 이렇게 부각되는 것을 보면 사회적 인식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밀어내기’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 보면 과다 물량의 공급은 덤핑이라는 염가 판매를 유발하게 되어 대리점의 수익구조를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경제적 책임에 위배될 수 있으며, 하도급거래관련법 위반으로 법적 책임에도 어긋난다는 사항을 지적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본사와 대리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대부분의 거래에는 본사의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리점은 간혹 출혈을 감수하여야 한다.

물론 출혈 후에는 응당의 보상이 따르고 있기에 사실 음성적 상생이라 볼 수 있다. 이 또한 상생이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이다.

대리점은 본사의 재화 혹은 용역을 생산자 혹은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supply chain의 한 과정이며, 본사의 opinion leader이기도 하기에 대리점 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마케팅 이론에서 대리점은 본사가 비용 때문에 할 수 없는 다양한 정보 수집, 예를 들면 고객정보, 제품정보, 경쟁사정보 등의 최전방에 있기 때문에 본사 입장에서는 최종 고객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여야 할 유통 채널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최근 언론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은 하나같이 기업윤리와 사회공헌에 이바지 해 온 명성 있는 기업들이란 점에서 우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다소 形骸化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조직의 일부 직원의 독단적 행동은 분명 개인적 차원의 white collar범죄 유형이겠으나 조직도 이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기업윤리의 기본은 조직 내부의 강령(code of conduct)준수일 것이며,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는 기업은 더욱 엄격한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지역사회 발전, 사회공헌 모두 필요하겠지만 우선은 주변의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 조직을 사수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령준수(compliance)를 통한 양성적 상생을 위한 조직 내부의 환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甲이란 위치가 더 이상 ‘전가의 보도’가 아님을 상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