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의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 바람이 불고 파도가 넘실거려 큰 기대 없이 소연평도 해안의 뻘에서 봉돌을 끌고 있는데 갑자기 ‘휙’ 하면서 낚싯대를 끌어당기는 큰 입질이 왔다.

황급히 낚싯대를 들어 올리자 강력하게 물고기가 버둥거리며 저항하고 있어 직감적으로 광어라고 판단되었다.

천천히 전동릴을 감아올리는데 낚싯줄이 감기지 않고, 낚싯대가 휘어지며 내 몸이 딸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치고, 자세를 꼿꼿하게 유지하면서 낚싯대를 양손으로 움켜잡고 전동릴을 손으로 조금씩 감아 올렸다. 수심이 5m에 불과하였지만 빨래판광어가 수면위로 떠오르데 1분이나 소요되었다.

주변의 동호인들이 빨래판광어를 보고 “와!”하고 함성을 질렀고, 나는 낚싯바늘이 광어의 입에 제대로 걸려있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낚싯대를 바짝 들어서 광어를 선상으로 사뿐히 내려놨다.

‘퍼덕 퍼덕’ 광어의 리드미컬한 소리를 즐기며 광어가 힘이 빠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선장은 빨래판광어가 봄철에는 흔하지만 여름부터 드물어 오랜만에 큰 광어를 보았다면서 축하해 주었다.

얼마 후, 선장은 낚시를 끝내고 당섬 선착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우리는 차선장의 민박집으로 가서 짐을 풀고 대충 몸을 씻고 나서 선장 부인께서 정갈하게 차려준 식사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식사 도중에 차선장은 우리에게 거듭 사과하면서 “어제 우리가 전화를 하지 않아 안 오시는 줄 알고 다른 손님들을 모시고 낚시하였으며, 내일은 직접 우리를 모시겠다.”고 하였다. 차선장께서는 올해 예순아홉 살이시며, 부인과 단둘이서 민박집과 낚싯배를 운영하고 계셨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목선배와 오랜만에 바둑을 두었다. 한두 판 두고 나서 자려고 하였으나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살과 알이 꽉 차고 맛도 좋은 연평도 삶은 꽃게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다보니 결국 밤 12시를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자주 소변이 마렵고, 머리도 복잡하여 뒤척이고 있는데 4시 반이 지나자 한사람씩 일어나 세면과 낚시 준비를 하였고, 내가 맨 마지막에 일어났다.

아침식사를 하고 선장을 따라 선착장으로 가다보니 엊저녁에 꽃게를 떼어낸 그물들이 나일론 자루에 담겨 산처럼 쌓여 있었고, 꽃게의 잔해들이 즐비하였다.

보기에 성한 꽃게도 있어 손으로 들어보니 매우 가벼워 선장에게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속빈 꽃게로서 전혀 먹을 게 없어 버린다고 하였다. 그렇구나. 어느 어부가 애써 잡은 꽃게를 버릴 것인가?선장은 소연평도로 배를 몰았고, 우리는 각자 자리를 잡고 낚시채비를 준비하였다. 배가 소연평도 남쪽에 있는 등대에 도착하여 낚시하는데 수심이 깊은 곳은 10m 정도이고, 낮은 곳은 1m 정도였다. 등대 주변이 암초라서 바닥이 매우 거칠고, 바다물색도 탁하여 외줄채비에 미꾸라지와 오징어를 함께 꿰어 사용하였으며, 여러 마리의 잔우럭을 잡았으나 그토록 갈망하던 개우럭을 잡지 못했다.

오후에 연평도로 다시 올라가 낚시하는데 드디어 조관복씨가 47㎝ 개우럭을 잡았다. 나는 어떻게 잡았냐고 물었더니 낚시도 끝나가고 미끼도 없어 작은 미꾸라지와 오징어 조각을 꿰어서 고패질하고 있는데 개우럭이 덜컥 물어주었다고 하면서 통상 대물을 잡으려면 큰 미끼가 필요한 줄 알았으나 오늘 보니까 미끼의 크기와 관계없이 개우럭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였다.

나는 이번 연평도 출조에서 조관복씨가 개우럭을 잡아 장원한 것에 대해 축하해 주자 선장께서 술을 사야한다면 맞장구를 쳐 주셨다.

오후 4시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해지고 해수면이 거울처럼 반질거리자 선장은 다시 한 번 개우럭을 잡아보자면서 우럭 밭에 배를 대었다. 우럭채비가 바닷물 속으로 내려가고 나서 배의 엔진을 꺼버리자 온 사방이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다. 잠시 후 거울 같은 바다에 저녁노을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