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휴가도 반이 지났으나 생각처럼 물고기를 많이 잡지 못했고, 몸도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대청도로 나가 개우럭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활기가 샘솟았다. 중화동 포구, 어제까지 휘날리던 청기가 사라지고 아무 깃발도 없었다. 배에 오르는데 김사장이 힘내라면서 흑염소 액즙을 한 포씩 주었다. 그래! 액즙을 먹고 원기 회복하여 기필코 개우럭을 잡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우리 배는 포구를 힘차게 빠져나가 남쪽으로 내려갔다. 배안에서 오늘 사용할 낚싯바늘을 묶는 등 만반의 채비를 마치자 어느덧 대청도와 소청도가 겹쳐 보이면서 점차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포인트에 도착해보니 이미 대청도 어선들이 한창 조업 중에 있었다. 외줄채비를 내리자마자 ‘후드득...’ 하면서 4자 개우럭이 올라왔다. 이어서 입질이 크고 꽤나 무거워 5자 개우럭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막상 올려보니 광어였다. 여기저기서 수준급 우럭들이 올라오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빴다.

“후드득.. 옳다 또 왔구나!” 전동릴이 소리만 요란할 뿐 낚싯줄을 끌어올지 못하여 40여m을 손으로 감아올리는데 워낙 무거워 두 손으로 릴대를 치켜 올리고, 그 틈을 이용하여 릴을 감았으나 그것도 몇 번을 반복하자 결국 힘에 부쳐 잠깐씩 쉬어가면서 올려야 했다.

거의 다 올라온 느낌이 들어 물속을 들여다보니 어린아이 머리만한 크기의 우럭 두 마리가 서서히 올라왔다. “뜰채!”를 외치려다 잠시 생각해보니 너나할 것 없이 다 바쁜데 뜰채를 가져다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냥 올리기로 작정하고 “하나, 둘, 셋”을 세면서 후다닥 선상으로 끌어 올렸다.

“쿵, 쿠쿵” 바위 덩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5자, 4자 개우럭이 선상에서 퍼드덕거렸다. 나도 모르게 “와!”하고 고함을 치자 모두들 달려와 감탄하며 우럭을 구경하였다. 나는 개우럭 쌍걸이를 처음 잡았는데 우럭 무게가 5~6kg, 150호 봉돌, 수심 40m, 빠른 조류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20kg 이상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중량감과 더불어 대물이 올라오면서 버둥거릴 때의 짜릿짜릿한 손맛과 쾌감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이는 대물과의 한판 승부에서 오로지 승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극치 손맛이었다.

나는 쌍걸이를 하고나서 기진맥진해졌지만 여전히 우럭과 노래미가 올라왔다. 우럭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하고나자 조류가 느려져 본격적으로 흘림낚시를 시작하였다. 낚싯바늘에 홍합 살을 꿰어 우럭채비를 넣자마자 노래미가 덥석덥석 잘도 물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대청도 물고기들이 나만 보면 환장하여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4자, 5자 개우럭과 방망이노래미도 좋지만 체력이 서서히 고갈됨에 따라 더 이상 낚시하기 어려웠다.

해가 기울자 선장은 대청도를 떠나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렸고, 나는 임위원과 선수에 나란히 앉아 ‘98년 1월 IMF때 실직하여 방황하던 중 후배의 추천으로 KAIT에 입사하였으며, 그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애환을 이야기하였다. 1999년 말, 임위원도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여 어느 정도 성공하였으나 사람을 잘못 만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결국 일 년 동안 일없이 지내다 지인의 도움으로 취직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어갔다.

바다에 어둠이 내리는 석양이 질 무렵, 40대에 예기치 않게 불쑥 다가온 삶의 질곡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 배가 중화동 포구로 입항하고 있었다.

배를 정박시키고 잡은 물고기를 물간에서 꺼내 아이스박스에 담아보니 세 개, 50kg정도 되었다.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메고 인근 할머니 댁으로 힘겹게 이동하여 잡은 물고기를 빨간 고무대야에 옮겨 담고서 어두컴컴한 우물가에 모여 앉아 손질을 시작하였다. 밤이 깊어가고 몹시 시장한데 손질해야 할 물고기가 너무 많아 나도 모르게 한 숨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