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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세계1위 네팔을 가다
2011년 06월 09일 (목) 백광열 elenews@chol.com
   
 
   
 
   
 
   
 

이 세상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 신들이 살고 있다는 이곳에 본지 최정규 발행인이 피동권, 유희도, 임정운 등 3명의 일행과 함께 지난 4월4일부터 14일까지 등반(오지탐험 트래킹)을 다녀왔다. 만년설로 뒤덮인 고봉들이 줄지어 서 있는 히말라야에서도 이들이 찾은 곳은 안나푸르나 무스탕지역. 신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오르지 못한다는 이곳을 이들이 어느 과정을 통해 다녀왔는지 최정규 발행인의 일지를 통해 그 여정을 연재로 밟아보았다. <편집자 주>

▲4월4일
드디어 출발. 기분이 좋다.
모든 사람들의 걱정을 한 몸에 담고 안나푸르나 등반을 위해 인천공항에 오전 8시40분에 도착했다.
10년 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산행을 시작한 내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중의 하나인 안나푸르나 트래킹에 나서게 됐다니 마음이 설레는 것은 당연지사.
여러 사람들의 후원과 격려 속에 떠나는 만큼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몸 건강히 돌아오리라 다짐하면서 비행기에 오른다.
오전 11시.
카트만두까지는 6시간50분이 걸릴 예정이다.
옆 좌석의 50대 초반 여인이 앉아 말을 거는데 그때 입국서류를 작성하라는 안내서비스를 받았다.
현지시간 12시, 카트만두 상공에서 비행기가 기류의 힘에 못 이겨 몹시 흔들린다.
옆 좌석의 여인은 아무 말이나 잘 통하는 여행의 달인인 것 같이 보여 부러워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트래킹 하는 코스를 이 여인은 차량으로 이동하는 코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포카라에서 다시 만나면 많은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당일 야간, 드디어 포카라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산행을 좋아하는 여러나라 사람들 속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사람과 맥주와 조니워커를 섞은 칵테일을 즐기면서 되지도 않는 영어를 손짓발짓을 섞어 이야기하는 내가 우습게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한국의 제주가 제일 좋다는 그 친구의 말에 제주가 왜 좋으냐고 묻자 그 친구는 해녀가 있고, 맛있는 전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샤워를 하러 갔는데 이곳은 물은 많지만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우리나라 60년대처럼 우물에서 누드목욕을 했는데 오랜만의 노천목욕이라 그런지 마냥 즐거웠다.

▲4월5일
아침 6시 기상.
호텔에서 아침촬영을 마치고 좀섬으로 가는 비행장으로 우리 일행은 가이드와 함께 출발했다.
헬기를 타고 좀섬에 도착해 깍그메니까지 산행을 하는데 3,000미터의 고도라 그런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길을 가는 도중에 복숭아나무를 위해 담장을 쌓는 인부들을 만났다.
우리 일행은 인부들과 석축을 쌓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친해진 10명의 인부들에게 막걸리 값으로 10달러를 주었더니 너무나 고마워한다.
지나는 도중 사원에 들러 가족들을 위해 108배의 종을 2번이나 울리고 숙소로 돌아와 깔리건더기강 옆의 산장에 여장을 풀고 닭 1마리를 주문했다.
너무나 추운 베이스캠프에서 저녁으로 양고기 카레를 보온할 겸 먹었다.
카레수프는 정말 일품이었는데 걱정거리가 생겼다.
우리 일행 중 동권이 형의 얼굴이 너무나 부었던 것이다.
저녁식사도 잘 하지 못하고, 내일은 셰르파를 1명 더 써야 할 것 같다.
이곳은 고산증 때문에 머리는 너무나 아팠지만 순진 그 자체의 이곳 사람들을 보면서 아픔을 달랬다.
힌두교와 불교라는 서로 다른 종교가 같은 한 장소에서 공존하는 이 곳.
네팔은 하늘 아래 첫 동네, 신이 내린 동네라고들 한다.
티벳에서, 인도에서, 유럽에서, 아시아에서, 이렇게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 종교를 가지고 해발 5,000여 미터를 넘어 맨발로 몽골을 지나 히말라야의 설산을 넘어 무스탕지역으로 몰려왔다.
내 종교와는 틀리지만 이곳 네팔의 원주민과 유목민은 정말 순수하게 느껴지는 이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 휴대폰이 안 돼 옆의 동생 휴대폰으로 지인들에게 무사함을 알렸더니 응원의 메시지가 도착해 이역만리에서 큰 위안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복사꽃이 곳곳에 지천으로 피어 있고, 하늘에는 이 세상 어느 곳보다 높은 곳에서 보는 별들이 내 눈에 떨어질 듯 총총히 떠 있어 정말 걱정을 뒤로 하고 여길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6일
이곳은 너무나 추워서 양말도 신고 내복도 입고 털점퍼도 입고 침낭 속에서 잠을 잔다.
술은 가지고 다니지만 한 잔도 못했다.
저녁은 양고기 카레를 먹었다.
산토스라는 셰르파가 너무 추워해 내 옷을 가져다 주었다.

▲4월7일
무스탕지역 캠프에서 일어나보니 앞에 보이는 산이 설산으로 정말 장관이다.
고산증 때문에 밤새 한 잠도 못자고 물만 먹었다.
머리가 갈라지는 것 같은 고통은 어쩔 수가 없을 지경인데 게다가 코피까지 나와 약을 먹었다.
머리는 아픈데도 앞에 보이는 설경은 너무도 좋다.
오전 7시 아침식사를 하고 좀섬으로 출발한다.
무스탕지역에서 좀섬으로 내려오는 트래킹 길은 해발 4,500미터의 산을 넘어야 한다.
머리는 아프고 다리는 떨어지지 않지만 설경과 풍광이 위안이 되어 그나마 견딜 수 있다.
트래킹 도중에 감자를 삶아 먹는 현지인 식당에서 옥수수차와 막걸리, 감자를 맛있게 먹고 모래사막, 자갈밭사막을 바람과 맞서 싸우면서 걸었다.
거친 모래바람을 맞으며 걷던 일행은 모두 너무 힘들다며 내일부터는 짐꾼을 모두 쓰자고 합의했다.
점심 겸 저녁은 현지에서 닭을 사서 가이드가 아는 집에서 한국식 백숙을 만들었는데 나는 한 점도 먹지 못했다.
고산병이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행히 동권이 형, 희도 형, 아우 정운이는 그런대로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파 숙소로 먼저 와서 잤다.
한 잠 자고 있는데 가이드가 죽을 가지고 와서 조금 먹었는데 몸이 많이 풀렸다.
저녁은 만두인데 내 입맛에 잘 맞아 아주 많이 먹었다.
비바람에 창문이 너무 많이 흔들린다.
내일을 위해 이제 다시 자야지.

▲4월8일
좀섬을 출발한다.
아침 7시, 기분이 정말 좋다.
그런데 술도 한 잔 하지 않았는데 얼굴이 많이 부었다.
서울 같으면 술을 많이 먹어서 얼굴이 부었을 텐데 이곳은 산소 부족 때문인 것 같다. 이곳에 도착해서 4일간이나 술을 먹지 않았으니 내 인생에 있어서 대기록이다.
최정규! 이번 기회에 서울 가서도 술 좀 조금만 먹어라. 알았지?
내 자신과 약속하며 귀국해서도 하루에 소주 한 병 또는 두 병 이상은 먹지 않을 것을 마음속에 아로새겼다.
창 너머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정상의 눈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좀섬 출발.
독구치라는 곳으로 이동 중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대한민국 선인들의 발자취를 밟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은 정말 평화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오전 11시 독구치 도착.
독구치 구멍가게 식당에 앉아 점심식사를 기다리는 내가 정말로 여행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바삐 다니는 여행보다는 느림보여행이 좋다는 것을 나이가 먹은 이제야 느끼니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상으로 너무나 바쁘게 이 세상을 살아 온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느린 생활로 바꾸며 살아야지….
점심식사 후 독구치를 출발해 갈라파니아로 이동했다.
이동 중 강과 다리, 산 위의 자갈길을 지나 내려오는 동안 느낀 점이 많았다.
천연연료인 태양열과 소수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에너지절약 및 친환경을 정말 실천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여정은 다민족 중에서 동양인은 얼마 없고, 유럽인들이 거의 트래킹 하는 코스인 것 같다.
오후 4시, 갈라파니아 도착.

▲4월9일
'사람을 위한 의자만 있는 곳이 아니라 말 못하는 짐을 위한 의자도 있는 곳.'
이곳 네팔은 하늘 아래 첫 동네답게 짐들도 편히 쉴 수 있는 짐들만의 의자도 있다.
일반인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천진난만의 고장이다. 이곳에서 동양인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코스가 너무 힘들어서 동양인은 거의 없다는 대답이다.
숙소 앞이 바로 가이드(자이아)의 집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이드의 은사님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가이드의 은사님은 우리를 인자하게 맞아주면서 말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우리 가이드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후 갈라파니아를 출발해 내려오는데 오지체험다운 험한 길과 여기저기 보이는 산동네는 정말 절경이었다.
힘은 들고 발은 떨어지지 않지만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지고 간다는 느낌이 든다.
점심은 양배추 삶은 것에 고추장, 계란프라이.
계란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지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느끼게 됐다.
내려오는 길에 느닷없이 비바람이 닥쳐와 너무 고생이 심해 할 수 없이 트럭버스를 탔는데 차안이 비좁아 짐짝처럼 취급당하며 내려오는데 너무나 무서웠다.
100미터, 아니 무한대의 낭떠러지가 하염없는 길.
중국의 낭떠러지 길은 길도 아니다.
비포장도로에다 지금 막 개통한 길이라 정말 위험천만한 길인데 셰르파(짐꾼)들은 트럭 위 짐을 실은 자동차 위에 맨몸으로도 여우가 있어 보였다.
트럭으로 30분 정도 내려오는데 우리 일행 중 동권이 형이 '옴마니 반비아울'이라는 말을 하염없이 외쳐댔다. (티벳 불교의 기도말로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는 말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트럭을 모는 이 외국인 운전사에게 슬로우, 슬로우를 계속 요청했는데 그 정도로 위험천만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차로 30분 정도 내려와 하차하니 온천 지역이었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한화 900원 하는 노천 온천. 겨울 속에 열대과일이 있는 곳이 나타났다. 이곳이 오늘 묵을 숙소인 것이다. 정말 겨울 같은 날씨에도 천당 같은 곳이 네팔이라는 나라인 것 같다.
저녁은 물소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단백질 섭취를 많이 했다.
산장의 양철지붕에 비 부딪치는 소리가 너무도 정겹고 경쾌했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누군가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는 느낌은 무엇일까?
옆방의 동권이 형과 희도 형은 무엇이 즐거운지 두런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밤이 깊도록 끊이지 않는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좀체 오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서 일까?)
네팔은 천혜의 관광지다.
산 위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는데 밑에는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이 흐르고, 그 옆에는 열대과일이 우거진 천연의 자연을 가진 나라가 네팔이다.

▲4월10일
오늘은 산행이 힘들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해발 1,500미터를 걸어서 다시 해발 3,000미터로 올라가는 코스다.
올라가면서 온천에서 계란을 삶아 먹을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기대를 하면서 힘을 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수행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지쳐 있었지만 열심히 오늘도 즐거운 여행길이 되었으면 한다. 점심 식사 후 트래킹이 시작됐다.
도중에 물소를 잡는 동네를 지나다 물소고기를 사고 현지인과 소주도 한 잔 했는데 이곳에서는 고추장이 아주 인기가 높았다.
네팔에 있는 야화족(몽골족)들의 TV에서나 보는 듯 소 한 마리를 잡아 한 몫씩 나누는 것이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재연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정말 착한 사람들이다.
오후 7시,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몽골족.
고레파니에 도착해 중간에서 사가지고 온 쇠고기를 구워 먹고 찌개도 해 먹었는데 숙소에서는 쇠고기를 먹을 수가 없어서 밖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가이드와 셰르파, 우리 모두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내일은 푼일까지 강행군이다.
푼일에 도착해서는 전망대에 올라 아침 일출을 볼 예정이다.

▲4월11일.
새벽 4시30분, 일출을 보러 푼일의 전망대로 올라갔다.
새벽 일찍 앞을 바라보니 8,700미터 안나푸르나의 1봉 모두가 같은 높이인 것 같다.
푼일도 3,200미터의 높이이다.
일출은 바다의 일출보다 더 눈이 부셨는데 안나푸르나 건너에서 하얀 눈을 반사시키며 해가 올라왔다.
일출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온 가족의 건강과 행복,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뜻으로 '콘베이 만비아'를 마음속으로 계속 외웠다.
아침식사는 한국에서 수입한 농심 신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이곳에서 먹으니 정말 너무도 맛있었다. 이곳에서는 신라면이 굉장히 비싼 음식이라고 한다.
오전 8시, 고레파니에서 깐트르로 출발했다.
협곡 1,000미터를 내려와 다시 1,600미터를 올라가야 하는 협곡 중의 협곡이다.
앞을 바라보니 까마득히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협곡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도 맑고, 공기도 맑고, 정말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이다.
산 위에는 눈이 덮여 있고, 아래에는 물이 흐르는 강이 있고, 게다가 정글자역까지 있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욕심이 없을 것 같다.
타라빠니 레오나르라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메뉴는 양배추 삶은 것과 마늘무침에 후겐트(쌀밥과 상추무침이 같이 곁들여진 카레비빔밥) 등 3가지.
저녁 무렵 우리 일행은 안나푸르나 중턱 산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생닭으로 닭볶음탕도 만들고, 생닭에서 나온 닭똥집에 네팔소주도 한 잔하면서 푸짐하게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소주도 한 잔 한 기분에 마냥 들떠서 밤이 늦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벌써 아침이다.
하늘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정말 기분이 상쾌하다.

▲4월12일
아침식사 후 오전 7시 깐트르에서 포카라 시내로 출발했다.
낫술이라는 이번 일을 추진해 준 사람의 가게로 가면 오늘 일과는 끝이다.
비너스호텔에서 아주머니뻘인 서양여자를 만났는데 그곳에서 나는 음식냄새가 아주 좋았다.

▲4월13일
오늘은 포카라를 출발해 카트만두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동권이 형과 산책길에 노상 상인에게서 빵을 사 먹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화장장에 갔는데 갠지스강 제일 상류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서는 노천에서 나무 위에 시체를 올려놓고 화장을 한다. 나무 위의 짚단에서 나는 냄새가 아주 나빠 마스크를 했는데도 숨쉬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옆에 있던 희도 형은 마스크를 했다고 도리어 한 마디 한다.
저녁에는 전통 네팔음식점에서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했다.
한국의 한정식음식점처럼 춤추는 것을 보면서 식사하는 곳이다.
희도 형이 아는 분이 식사예약을 해서 30분 이상 걸어와 식당에 도착했는데 마침 정전이 돼 촛불을 켜고 저녁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 한국 사람은 우리뿐이고, 나머지는 중국, 유럽, 인도 쪽 사람으로 식당 안이 가득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사람들이 이곳에 오지 않는 이유는 이곳에서 제공하는 고유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래도 분위기는 아주 좋은 것 같다.
옆에 있던 정운이가 나를 보면서 얼굴이 검게 타서 꼭 네팔 현지인 같다고 놀려댄다.
이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동안 현지 남녀들이 나와 춤을 추는데 이 춤이 네팔 전통춤인 컨설테트라는 민속춤이라고 한다.
밤 10시30분, 2차로 평양식당에서 노래방에 들려 놀면서 들쭉술도 한 잔 했는데 떠나기 전날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감회가 깃들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비록 남한 사람은 아니지만 누가 뭐라 해도 같은 한민족이라 자꾸 애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음식을 날라주는 아가씨도 해주 최 씨로 이름은 최해옥이라고 한다. 같은 종씨라 그런지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네팔에서의 마지막 하룻밤.
아쉬움에 속에 잠이 잘 올지 자신이 없다.

▲4월14일
몸이 무겁기는 했지만 네팔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내고 아침 일찍 잠이 깼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낮 12시 정오. 우리 일행을 태운 비행기가 드디어 한국으로 기수를 돌리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동안 이번 여행기간 동안의 일정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쉽게 다녀오기로 결정하기도 힘든 여정이었지만 또 그만큼 한국에 돌아와서도 잊기 힘든 일정이었다.
오후 11시 우리 일행은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주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막상 한국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생소한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인간의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몸은 한국에 도착했지만 아직 아니 영원히 내 체취와 그곳에서 느꼈던 마음은 고스란히 네팔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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